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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간의 일본 유럽
    ckklein     2015/04/10 7:14 am
일주일간의 일본 유럽 (1)
2015년 2월 구 자 문

아침 8시 인천공항을 떠나 일본의 후쿠오카공항 앞에 대기한 리무진에 오르니 겨우 1시간 반이 지난 9시 30분이었다. 공항건물은 20년전 그대로인데, 입국수속은 좀 더 신속 친절해 진 것 같다.

2시간을 달려 가라츠 라는 곳에 도착했다. 한자로는 唐津인데, 이곳이 일본에서 자기가 가장 처음 만들어 진 곳으로서, 임진왜란때 조선도공들이 끌려와서 이곳에서 자기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좋은 흙으로 그릇을 빚고, 유약을 바르고, 1,400도에 구어 내어 질 좋은 자기를 구워내었고, 이것이 일본문화를 전폭적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는 귀족들만이 자기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들 조선도공들로 인해 자기가 좀 더 널리 이용되었고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를 통해 나라가 개항하게 되었고... 이밖에도 조선의 기술자들이 영향을 미친 것이 많다. 축성, 칠기가구 등

이곳 겨울은 일본이지만 꽤 추운데, 한국과 같이 보리밭이 많아 한국의 전원과 비슷하다. 일본 전역에 까마귀가 많은데, 이 지방에만 까치 떼가 있어 까마귀들이 기를 못 편다는데, 이 까치들도 임진왜란때 한 왜장이 60마리를 잡아와 풀어 주었기에 그렇게 불어난 것이라고 한다.

이 까치와 까마귀는 같은 과의 새인데도 한국에서는 각각의 이미지가 크게 달랐다. 까치는 길조로 여겨진 반면 까마귀는 흉조로 여겨져서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신경통약으로 포획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흔하고 길조로 여겨지는 것 같다. 까마귀가 국가대표축구단의 마크로 이용되고 이미지 캐릭터로 흔하게 사용된다.

까마귀는 매우 영특하다고 한다. 과거에는 까마귀들이 단단한 열매를 철로 위에 놓고 기차가 지나가면서 깨드리면 주워 먹었는데, 요즈음은 고속철이 빨라 위험하니까 보통 길 신호 등 위에 않아 있다가 빨간불이 들어와 차들이 멈추면 열매를 길 위 차 다니는 곳에 가져다 놓고 피란 불에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빨간불이 들어오면 깨어진 열매를 주워다 먹는다고 한다.

당진시에 있는 켄카이 원자력발전소 전망대에서 보니 대마도가 85km 거리로 멀리 내다보인다. 지척이다. 임진왜란때 리아스식 해안 깊숙이에서 몰래 함선을 건조한 일본인들이 조산을 손쉽게 건너 쳐들어 간 것이다.

임진왜란은 역사책에서 여러 가지 발생 원인을 이야기 하지만, 도자기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전쟁이 없어 불만인 사무라이들에게 한국을 치면 도공들을 데려와 우리도 자기를 만들 수 있다. 조선을 치자.

임진왜란 이후 일본자기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도공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깡촌에 잡아 두었으나 몇 년 후 적응이 된 후에는 신분을 귀족 다음의 신분으로 높여 주었다고 했다.

일본은 전장이 3,000km나 된다. 국토면적도 우리 한국의 거의 4배에 이른다. 수림이 우거지고 산짐승도 많다. 활화산이 요즈음 늘어나 휴화산과 모두 합쳐 과거 108개에서 112개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일본의 ‘1품 1촌’ 프로그램의 시초가 된 오오야마의 유메공방이다. 이곳에서는 매실주 공장을 만든지 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매실주는 건강에 좋다고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실을 모아 3-5년 숙성시키는데, 다양한 색깔과 병 디자인의 고급품전략을 쓰고 있다.

일본에는 각 지역마다 명물이 있다. 목각인형, 전통 칼 같은 특산물도 있고, 기차역마다 유명한 도시락이 있다. 로컬푸드가 성공하려면 소비자가 안심하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로컬 기념품들이 성공하려 해도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지역과 함께 브랜드화 되어야 한다.

1품 1촌 전략의 성공요건은 1) 지역에 바탕을 둔 기발한 아이디어 2) 다품목 소량생산 2) 우수한 품질과 브랜드로 고부가가치 창출 3) 농가 순소득 향상 4) 농산물의 생산·가공·유통·판매를 아우르는 6차산업 시스템구축이라고 본다. 한국도 이러한 '1촌 1품' 운동을 벌이면 좋을 것이다.


일주일간의 일본 유럽 (2)
2015년 2월 구 자 문
12시간의 비행을 거쳐 프랑스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한 것은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었다. 드골공항은 깨끗하고 입국수속도 간결했다. 대절된 버스를 타고 에펠타워 인근의 한국식당으로 가서 한국식 저녁을 먹고 10시경 에펠타워의 야경을 구경했다. 10시쯤에 몇 분간 에펠타워의 전구들이 빤짝이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있었다. 소매치기가 많다 해서 조심스럽게 사진 찍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호텔로 왔다.

아침 일찍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소세지, 베이컨, 감자 위주의 아침을 먹었다. 손님들 중에는 아시아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 지난 1년 동안 중국인 100만명, 일본인 150만명, 한국인 30만명이 프랑스를 찾았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아직도 파리만을 방문하지만 요즈음 일본인들은 지방을 방문한다.

프랑스는 우리 한국의 5배도 넘는 국토를 가지고 있는데, 인구는 6,000만명 정도이다. 농업이 매우 발달되고 농민 1가구당 26ha (3,000평 x 26) 정도의 농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첨단산업국가로서 우주항공, 원전, 고속철 등 한국이 도입한 기술들도 많다. 프랑스에는 58개의 원전이 있는데, 화력발전을 위한 석탄도 풍부하지 못하고, 수력발전을 위한 물리적여건도 좋지 않아서 택한 선택이라는데, 이로 인해 전기생산량이 풍부해져서 인접국가에 수출도 한다.

무어라 해도 프랑스는 문화적인 저력을 지닌 국가이며, 역사적인 건물들도 많고 유명한 예술품들도 많다. 20만점 이상이 등록된 루브르박물관에는 1년에 1,0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찾아온다. 공공건축에도 화가들의 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8시에 북부해변인 깔레로 떠났다. 겨울치고는 아주 좋은 날씨라는데, 휴게소에 들를 때 쯤은 약간 비가 뿌리며 흐려졌다. 이곳 날씨는 흐리고 변덕이 심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들판 한가운데를 달렸다. 가금 보이는 숲들은 대개 미루나무와 참나무인데, 평지 이곳저곳에 무더기로 흩어져 있다. 신기한 것 중하나가 한국에서는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겨우살이였다. 가끔 큰 나무에 새둥지처럼 4-5개 이상 달려있기도 했다.

프랑스는 땅도 넓지만 각 지역들이 조금씩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인종도 약간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광객들, 특히 구미의 관광객들은 파리만이 아니라 각 지방들을 여행하며 그곳의 문화와 음식을 음미한다고 한다.

넓은 들에는 밀이 심어져 푸릇푸릇 싹이 트고 있다. 아주 드물게 트렉터가 보이기도 한다.

여기저기 큰키나무 숲들이 계속된다. 구릉이 아닌 평지에 뭉텅이로 서있는 나무들은 어떤 곳은 참나무가 어떤 곳은 미루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가끔은 소나무 군락도 있다.

숲에는 사슴, 멧돼지, 토끼, 고슴도치 등 산짐승이 많고 나무열매, 버섯, 고사리 그리고 약초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약초학이 발달되지 않아서 약초에 관심들이 적지만 버섯요리는 크게 즐긴다고 한다.

로마시대부터 이곳은 큰 전쟁터였다. 넓은 들에서 아군과 적군이 일정거리를 두고 대치하다가 드디어 일렬횡대로 돌격하는 것이다. 이 넓은 지형에서 로마 군인들은 100x100 형태의 사각형으로 진을 치고 긴창과 방패로 공격해오는 기마병들을 막아내며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후에 나폴레옹이 영국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를 때, 나폴레옹 자신은 영국군이 이러한 밀집대형을 이룰 것으로 예측을 했으나, 어쩐 일인지 그 말이 전달되지 못하고 휘하의 장수가 이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패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2차 대전 중에도 이러한 곳에서 전차부대들의 전투가 크게 벌어 졌었다. 이러한 전차들은 산과 골짜기가 많은 한국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병들의 제물이 되기 십상이다.

4시간 후에 노르망디 지방으로 도버해협을 마주보고 있는 깔레에 도착해서 해산물 식당에 들렀다. 이곳에서 유명한 광어와 가리비 요리를 먹고 와인도 한잔했다.

그후 인근의 원자력발전소 냉각수를 이용한 대규모 양어장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농어, 광어, 우럭 등을 키우는데 1년 판매액이 1,500억 – 2,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오후에는 원자력 발전소 주변의 생태공원을 돌아보았다. 수백ha의 대지가 바다에 면해있는 사구와 함께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철새들이 날아오고 온갖 식물들이 자란다. 여름에는 관광객들이 해변을 덮고 수개월 동안은 사냥도 허용된다고 한다.

이곳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졌단 곳으로 아직도 그 당시의 벙커가 남아 있고 독일군 유골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또한 많은 프랑스인들이 연합국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처형되었고 그 후에 세워진 추모비도 있었다.

깔레 인근의 로보텔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이곳은 영국과 연결되는 지하도 입구로서 많은 트럭들이 왕래한다. 트럭들이 정체되어 잠시 서 있는 사이 수만리 국경을 넘어온 아프리카 사람들이 트럭 뒤에 매달려서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물론 많이 잡히기도 하지만 넘어가는 수도 많은지, 많은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밀입국을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검은 복장의 헌병과 경찰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도 다 감당을 못하는 모양이다.

다시 파리로 향했다. 집시들이 사는 쓰레기 더미의 거리를 지나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몽마르트 언덕, 올림픽 스타디움, 그리고 LG와 심성건물. 드디어 바스티유광장 인근 식당에서 홍합요리로 점심을 했다.



일주일간의 일본 유럽 (3)
2015년 2월 구 자 문

파리 북역에서 오후 3시 30분 떠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기차를 탔다. 3시간 30분 걸려 암스테르담의 스키폴역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었다. 대절된 리무진을 타고 바닷가 전통식당으로 갔다. 금발의 남녀노소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식당 앞에는 풍차 하나가 높이 서있다. 이곳은 15-6세기 이래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오랜 건물이며 가구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호텔에서 조반 후 리무진에 오른 것은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이었다. 1시간 30분 걸려 도착한 곳은 Tomato World라는 곳으로 큰 유리건물에 60가지 정도의 각종 토마토들을 수경재배 하는 곳이다.

토마토는 한그루가 줄기 두께 3-4 센티미터로 17미터 까지 자란다. 이를 곧게 자라게는 못하고 둥굴게 감아 놓는데 여기에 많은 과일들이 열리나, 뿌리 부분은 작은 화분정도의 크기이다. 여기에 각종 영양소와 수분을 공급한다. 농약을 치지 않고, 흙에 심지 않기에 잡균들이 자라지 않는다. 발생하는 벌레들은 약을 뿌리지 않고 천적 곤충들을 배양해내어 자연스럽게 박멸시킨다.

이곳은 인근의 지열발전소의 전력을 공급받는데, 지하 3-4km까지 뚫어서 섭씨 80-90도의 물을 이용해 온실을 덥인다.

파프리카 농장에도 갔다. 이곳도 토마토농장과 비슷하게 파프리카를 키우는데, 지금은 수확 철이 아니라서 파프리카를 시식할 수는 없으나, 주인 여자분의 안내로 이고저곳을 돌아보고 많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는 국토가 좁고 많은 부분이 해저 7미터 정도의 개척지이다. 땅을 조금만 파도 물이 나올 정도라서 이곳저곳에 운하가 많다. 프랑스의 경우보다 더욱 멋지고 유복한 농촌의 모습인 것 같다.

암스테르담에는 수백년된 건물들이 거리 곳곳을 이루고 있다. 건물이나 구조물에 건립연도를 조각해 놓는 경우가 흔한데, 1625년 이런 식이다. 도로는 좁지만 트램이 다니고 있으며, 거리는 갖가지 박물관과 상점들과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200년 이상 된 건물은 허무는 것은 물론 고치기도 힘들어서 도시 전체가 옛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저녁식사를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오래되고 맛있다는 전통식당으로 갔다. 그리 크지 않은 2층 건물인데, 16세기부터 대대로 운영된다고 한다. 각자 생선구이, 양고기, 쇠고기 등을 시켰는데, 생선은 박대구이였고, 양고기는 뼈 주위로 살이 둥글게 달린 스팀으로 익힌 것이고, 쇠고기는 케밥 스타일의 스테이크 덩어리였다.

재미있는 것은 전채로 준 음식이 포항의 과메기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청어를 그만큼 말린 것은 아니지만 맛과 모양이 비슷했다. 스프와 후렌치후라이도 시키고 샴페인과 맥주도 시키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거리를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밤이지만 암스테르담은 불야성이었다. 젊은이들로 거리가 가득차고, 음식점, 주점은 물론이고, 댄스홀, 재즈바, 그리고 홍등가까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집세는 한달에 300-400만원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집값은 오르지 않는다. 사람들도 집 사는 것에 관심이 없다. 집들이 역사적 건물들이라서 고치기도 쉽지 않다.

이곳은 세금이 매우 높아서 손질의 40-50%를 내게 되는데 복지가 자기들에게 되돌아옴을 믿기에 잘 들 살았는데, 요즈음은 정부도 힘들고 경기도 좋지 않아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주민들도 부부가 정신없이 일해야 집세내고 생활 할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은 찬바람이 거센 거대한 호숫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나는 생선구이와 샐러드를 시켰고 진한 커피를 두잔이나 마셨다. 분명 한국보다 기온은 높은데 찬바람이 너무나 매서웠다.

점심 후 일종의 테마파크인 풍차마을로 가서 풍차도 구경하고 치즈공장도 견학했다. 과거에 풍차는 관개용이나 홍수조절을 위해서 그리고 제분을 위해서 크게 이용되었으나 요즈음은 그냥 관광용일 뿐인 것 같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위에 유리지붕이 덮인 1시간 짜리 크루즈도 탔다. 아름다운 거리를 구경하고 사진도 찍는데 안내방송이 화란어, 영어, 한국어, 그리고 마지막 것은 어디 언어인지 모르겠다. 일본어도 중국어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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